민족에 대한 배타성과 이질감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보수적 성향을 띠는 민족주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민족주의는 바로 ‘민족’을 위한 사상이다. 민족성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내부 차별이 극복되어야만 한다. 근대적 의미의 민족은 구성원간의 평등성이라는 전제하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
민족주의의 자강론(自强論)을 형성시키고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실력양성운동을 촉발하는 계기를 이루기도 하였다
사회진화론은 강자에 대한 패배를 불가피한 숙명으로 보고 그 저항의욕을 약화시키는 패배주의를 낳았다
대한제국기 사회진화론을 찬성한 인물 : 유길준, 윤치호
대한제국기 사회
조선정부는 각각 근대 교육을 위한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먼저 원산학교(元山學校)의 개교를 들 수 있는데, 이 학교는 덕원부(德源府) 민중들이 스스로 성금을 모아 만들어졌으며, 근대적 교과과정을 가르쳤다. 이는 민간측의 근대화 의욕이 강하게 존재했다는 증거이며, 이미 민중들 사이에도 근대
조선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자발적인 폭발을 유도해 내, 1894년의 동학혁명을 가능케 한다.
동학혁명은 탁월한 개혁자에 의한 것이 아닌 잔반에 의해 지도됨으로써, 보민사상과 만민평등 사상을 제도적으로 수락하게 하지를 못하고, 민중의 에너지를 개화 저지와 왜적 소멸에만 투입한 것이 동학혁명
사상이 주장되어 고대사의 무대가 확대 ․ 인식됨.
⇒ 신채호의 역사학이 완성된 시기이며 고대사 체계가 구체화 되고 낭가사상이 주장되었다.
대표저술:『조선사연구초』에 실린 논문들과『조선상고사』및『조선상고문화사』
(3) 제3기(1925년 이후): 신채호는 좀 더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추진